연구개발 자금·역량·결속의 구심점
차기 신약은 글로벌 상용화도 '직접'

FDA 문턱을 넘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레이저티닙)는 '100년 기업 유한양행'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데 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①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신약개발 ②기술수출 등 비즈니스 개발 및 협상 능력 ③기술을 이전 받은 글로벌기업과 협업 능력이라는 성공자산을 기반으로 새로운 100년을 빌드업 할 수 있게 됐다.

유한양행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FDA 승인 이후 유한양행의 경영방향'을 설명하고 새로운 혁신신약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FDA는 19일(미국 현지시간) 렉라자와 존슨앤드존슨의 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 병용요법의 시판을 승인했다. 국내에서 개발한 항암제가 미국FDA의 허가문턱을 넘은 것은 렉라자가 최초였다.

조욱제 사장은 이날 "렉라자의 FDA승인을 비롯한 글로벌 진출이 시작점으로 작용해 또 다른 글로벌 혁신신약 출시로 이어지길 바란다"면서 "2026년까지 50위권 글로벌 톱 제약사라는 목표달성을 위한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렉라자 이후 새 신약개발에 나서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하겠다는 계획인데, 제일 먼저 기대되는 부분은 연구개발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는 자금의 유입이다. 

유한양행은 2018년 렉라자 1상 임상 당시 글로벌 개발·판매 권리를 존슨앤드존슨(당시 얀센)에 총 12억 5500만달러(한화 약 1조 67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이 중 1억 5000만달러(한화 약 2000억)를 이미 계약금과 마일스톤 명목으로 수령했으며, 남아있는 11억 500만달러(한화 약 1조 4700억원)는 미국, 유럽, 중국, 유럽 등지에서 허가 및 상용화 될 때마다 옵션으로 수령할 예정이다. 이번 미국 FDA허가에 따른 옵션은 약 6000만 달러(한화 약 800억원)로 조만간 수령할 것으로 예상된다. 

존슨앤드존슨은 유한양행의 렉라자를 직접 생산하기로 결정하면서 생산실적에 따른 로열티는 별도로 책정된다. GMP규정에 따른 허가기간 단축을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로열티 비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유한양행은 매년 최대 3000억원 가량을 기대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그동안 직접 제조하는 제품보다 글로벌제약사에서 도입한 상품 매출비중이 높다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렉라자의 성공으로 일각의 부정적 시선을 떨쳐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연간 매출 20% 이상(2500억원 규모) 연구개발비에 투자하는 회사 특성상 1년 연구개발비가 3000억원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R&D 기업으로 체질개선에 성공한 셈이다.

 

제2의 렉라자 후보는 고셔병치료제

글로벌 상용화 단계는 "우리 손으로"

렉라자의 FDA진출은 병용요법 파트너인 리브리반트를 보유한 존슨앤드존슨이라는 믿을만한 파트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한양행은 임상 1상 단계부터 렉라자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준 존슨앤드존슨을 파트너로 낙점하고 글로벌 판권을 이전했다. 

일각에선 혁신신약의 마지막 단추인 FDA허가와 글로벌 시판과정을 직접 담당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기는 하다. 리브리반트 단독과 렉라자와 병용요법을 모두 확보한 존슨앤드존슨이 렉라자의 단독요법을 별도로 상용화할지는 의문이다. 실제 기자간담회에서도 향후 렉라자의 글로벌 전략을 묻는 질문세례 속에서 유한양행 조욱제 사장은 수차 "존슨앤드존슨과 논의가 필요하다"며 말을 아꼈다. 

그룹사의 지원을 받은 SK바이오팜이 신약개발부터 허가과정 전반을 직접 수행했지만, 현실적으로 국내 제약회사 가운데 전세계에서 1000명 이상이 참가하는 글로벌 수준의 임상시험 설계와 진행, FDA의 허가심사 규제에 대한 이해까지 모두 해낼 수 있는 곳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글로벌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더 어려운 과정이다. 

김열홍 사장 역시 "FDA허가를 준비하면서 존슨앤드존슨측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렉라자의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면서 "앞으로 글로벌 상용화까지의 작업을 수행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조욱제 사장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우리가 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신약의 글로벌 상용화 단계는 쉽지 않다"면서 "아직까지 소수의 회사들 말고는 다른 제약사와 힘을 합쳐야할 정도로 아직까지 체급의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조욱제 사장이 현재 유한의 파이프라인 중에서 직접 상용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희귀질환치료제 YH35995라는 점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YH35995는 유전적 돌연변이에 따라 특정 효소가 결핍되면서 나타나는 고셔병 치료제다.

조 사장은 "임상 비용이 많이 들고 아직 기술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파이프라인을 독자적으로 상용화하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라면서 "파이프라인 중에서 고셔병치료제가 항암제보다는 임상 규모도 적고 비용이 적게 들 수 있어 끝까지 우리손으로 가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중"이라고 밝혔다.

 

자금·역량에 이어 결속 챙길 렉라자

'우리는 옳았다' 강조할 시금석 될까

조욱제 사장은 이 날 렉라자의 성공과 관련해 한 마디를 또 남겼다. 그는 "유한양행 임직원 모두가 좋은 약을 만들어 국민건강에 도움을 주고 이익은 사회에 환원한다는 유일한 박사의 유지를 받들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유한양행의 신약개발을 위한 R&D 자금과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회사에 깊이 새겨진 유일한 박사의 기업이념이 이상없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외부에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지 주목된다.

실제 유한양행은 렉라자의 2차치료제 급여등재 이후 1차치료제로 급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에게 유일한 박사의 기업정신에 따라 렉라자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조기 공급 프로그램(Early Access Program, EAP)을 도입했었다. 보험급여에 등재되기전에 비급여로 천문학적인 약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폐암환자들에게 연구목적인 임상에 등록하면 약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사실상의 무상공급 프로그램인 셈이다. 

2023년 7월부터 12월까지 약 5개월간 운영됐던 무상프로그램에서 렉라자를 공급받은 환자들은 약 887명에 달한다. 이들은 매달 약 700만원 이상 지출해야하는 약값을 아낄 수 있었다. 

다만 무상공급은 그동안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지만 유한양행은 5개월간 투여를 진행했다.  사실 지난 3월 유한양행이 주주총회를 통해 28년만에 처음으로 회장직을 신설하면서 업계에서는 많은 말이 오갔다. 속칭 '주인없는 회사'를 두고 일각에서는 유일한 박사의 창업이념이 훼손됐다거나, 새로운 시대정신과 맞지않는다는 등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에 대해 유한양행은 "글로벌 50대 제약회사로 나아가면서 예상되는 양적ㆍ질적 성장에 따라, 회사 규모에 맞는 직제 유연화 조치의 일환일 뿐”이라고 설명하며 억측을 자제시키기도 했다. 이후 렉라자의 FDA 승인으로 그동안 구호로만 여겨졌던 글로벌 톱50제약사로 진출 목표는 물론 외부의 불편한 시선도 어느 정도 잠재울 방도가 생긴 셈이다.

렉라자의 성공은 1926년 설립된 유한양행이 '그레이트 유한, 글로벌 유한'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고 새로운 100년을 설계하는데 있어서 이정표가 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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