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머신 없이도 10km 뛴 효과...운동 어려운 노인·장애인에게 새 희망

운동을 하지 않고도 근육을 얻는다면 어떨까.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약으로 살빼는 시대'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근육 강화까지 약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25일 발간한 바이오헬스산업 보고서에서 근감소증을 겨냥한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 '운동 유도 약물'을 소개했다.
핵심은 운동 시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물질 '엑서카인'이다. 엑서카인은 크게 근육에서 분비되는 마이오카인, 간의 헤파토카인, 지방조직의 아디포카인·바토카인 등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대사 개선, 혈당 조절, 면역 강화, 염증 억제 등 운동했을 때 나타나는 전신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운동 유도 약물은 바로 이 경로를 분자 수준에서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기술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덴마크 아르후스대학교 연구진은 'LaKe'라는 후보물질을 통해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약물은 혈중 젖산과 케톤 농도를 변화시켜 신체를 '운동 후 회복 모드'로 몰아넣는다. 젖산은 운동 후 피로 회복과 지방 분해를 촉진하는 신호로 작동하며, 케톤은 인슐린 감수성을 높이고 지방 분해를 유도한다. LaKe는 이 두 경로를 조정해 운동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운동 직후와 유사한 대사 효과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연구가 활발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근감소증 억제와 개선을 목표로 엑서카인의 기능과 기전을 탐구하고 있으며, △노화로 인한 근감소증 연구△운동 강도·종류에 따른 엑서카인 분비 규명△심혈관·대사 개선 효과와 연계한 임상 연구 등이 이어지고 있다.
양용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융합연구단 박사팀은 운동 중 근육에서 분비되는 엑서카인으로 'CLCF1'을 새로 발견했다. 해당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지난 5월 게재됐다.
연구에 따르면 젊은 사람은 한 번의 운동만으로도 혈액 내 CLCF1 단백질 수치가 크게 증가했지만 노년층은 12주 이상 꾸준히 운동해야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운동 강도와 종류에 따른 엑서카인 분비 차이, 나이에 따른 운동 효과 차이도 함께 규명하며, CLCF1이 근골격 노화를 억제하고 근감소증·골다공증 치료 신약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보고서는 운동으로 유도되는 생화학적 신호로 AMPK–SIRT1–PGC-1α 경로를 핵심 타깃으로 꼽았다. 이 경로는 세포 에너지 관리, 미토콘드리아 생성, 항산화와 항염증 반응에 관여한다. AMPK를 직접 활성화하는 AICAR, PPARδ 작용제 계열 후보물질들이 연구된 바 있지만 부작용 문제로 제약이 있었다. 결국 안전하고 정밀하게 이 경로를 조절할 수 있는 약물이 차세대 운동 유도 약물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대부분 후보물질이 전임상이나 초기 임상 단계에 머물러 있어, 효능과 안전성, 부작용, 실제 사용 적합성, 사회적 수용 가능성까지 폭넓은 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약물이 근육과 뼈 형성에 관여하는 신호전달 체계, 분자적 경로 간 상호작용 등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 후보물질마다 효능과 내성 기전이 다르고, 운동 방식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앞으로 규명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 유도 약물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은 단순히 운동이 귀찮은 사람이 아닌, 운동을 하고 싶디만 할 수 없는 노인이나 환자들에게 의미가 더욱 크다.
김민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원은 "근감소에 있어 운동은 그 자체로 가장 확실한 치료법이다. 하지만 운동이 불가능하거나 제한된 사람들에게 운동 유도 약물은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나 관절 질환 환자, 고령자들에게 운동 유도 약물이 제공할 수 있는 건강 이점은 단순한 치료를 넘어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상용화된다면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